김재경


김재경


150인이 숨졌다. 13인의 행방을 모르고 55인이 다쳐 장애를 얻었다. 1950년 7월 26일에서 29일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숫자들도 정확치않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사흘 밤낮동안 쌍굴다리 안에서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생사를 갈랐다. 반세기가 흘러갔다.아무도 책임을 말하지 않았다. 진상도 알 수 없었다. 사건은 분명 있었으되 어디에도 없었다. 수천의 유족들은 위패 없는 제사를 올려야만 했다. 유족 일부의 끈질긴 노력에도 진실은 재구성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은폐되기도 했다.

전쟁의 비극, 우발적 사건이라 했다. 다른 피해들과 묶어 위무되려 했다. 그러나 속속 드러난 기록들이 입을 열었다. 노근리 이곳에서의 사건이 결코 전쟁이란 큰 비극 속에 묻힐 작은 사건이 아님을. 특별법이 공포되었고 위령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진실은 아직 멀다. 노근리의 사건은 역사로 말해지기에는 아직 많은 부분이 남겨져 있다. 평화를 말하기에는 여전히 주체와 대상이 불분명하다. 분명한 것은 오직 희생자들의 공포와 유족들의 크나큰 고통뿐이다.


김재경


노근리의 사건이 우리의 표면으로 떠 오른 것은 오로지 유족들의 기억때문이었다. 그들의 활동이 있었다. 그로인해서 역사적 기록의 조각들이 드러났을 뿐이었다. 그 기록의 조각들을 앞에 놓고도 정확한 사실은 역사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직접 경험한 일들은 자전적 기억에 속한다. 역사적 기억은 역사적 기록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기억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노근리의 기억은 여전히 활동적인 과거다. 그러기에 단지 우리의 정체성을 계속 구축해 나가는 집단기억의 과정에 속할 일이다.하지만 집단기억의 과정에는 사건을 둘러싼 욕망들 사이에 어떤 긴장이 놓여있게 된다. 국가기관들, 피해의 당사자들 그리고 관찰자들의 욕망이 있다. 보편의 사회적 기억으로, 생애의 자전적 기억으로 그리고 인류의 교훈적 기억으로 갈린 긴장이 있다. 긴장의 상태가 정리되지 않은 노근리에서‘역사’와‘평화’를 말하는 공원은 아직 불안정하다. 또한‘역사’와‘평화’를 말해야 하는 박물관은 공허하게 시작될 수 밖에 없다. 공허하게 시작되는 건축은 집단기억으로 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축이다.


김재경


공식화된 역사에 대항하는 기억을‘반기억’이라부른다. 반 기억은 개개인의 경험이자 파편화된 기억이다. 자칫 제도화 되려는 기억의 틈새를 비집고 개입하려는 기억이다. 섣부른 기념비와 추모의 상징이 가진 공식적 기억의 아우라를 벗겨내는 기억이다. ‘반 기억’을 세우는 일에는 개인의 체험이 중요하다. 특히 그의 몸에 각인되는 체험이 소중하다. 그럴 때의 체험은 정지된 곳으로부터의 시각을 넘어 움직이는 육신에 가해지는 공간성이 우선된다. 노근리 사건에 대한 집단기억의 과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역사평화박물관’에서는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 ’만을 전달할 수 있을 뿐, 온전한 역사도 누군가를 향한 평화도 아직은 외칠 수 없다. 시간을 두고 공식화되려 하는 어떤 역사를 오랫동안 지연시키려 할 뿐이다. 현재진행형의 집단기억 과정을 지켜보아야 하는 ‘노근리 역사평화박물관’은 ‘반 기억’의 건축이 되려 한다. 그것은 방문자의 몸에 공간으로 개입하는 건축이 되려 한다. 그 개인의 개별적 체험이 누적되어 우리의 정체성을 계속 묻는 건축이 되려 한다.



설계: METAA

위치: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683-3번지 일원

용도: 관광휴게시설, 문화 및 집회시설 - 전시장

건축면적: 922.17 ㎡

규모: 지하 1층, 지상 2층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철골조

최고높이: 10.4m

외부마감: 노출콘크리트, 내후성강판

내부마감: 노출콘크리트, 수성페인트

총괄 건축가: 이종호, 우의정

인테리어설계:METAA

사진 :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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